LOG N LORE · TECH JOURNAL
AI가 만든 일은
누가 마무리하나
01 · THE WORK LEFT BEHIND
보고서는 빨리 나왔는데,
퇴근은 왜 빨라지지 않을까
상황 하나를 떠올려보자. 오후에 필요했던 보고서 초안이 몇 분 만에 도착한다. 문장은 매끄럽고 표도 들어 있다. 그런데 숫자의 출처를 찾을 수 없고, 결론이 실제 업무 조건과 맞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 자료를 다시 찾고 문장을 고쳐야 한다. 처음 작성한 사람의 시간은 줄었지만 그 결과물을 넘겨받은 사람의 일은 늘어난 셈이다. AI가 업무에 들어오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이런 시간의 이동인지도 모르겠다.
AI를 둘러싼 논의는 종종 두 끝으로 흐른다. 이제 사람은 필요 없다는 이야기와, 결국 쓸모없는 결과만 만든다는 이야기가 맞선다. 어느 쪽이든 실제 업무를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거칠다. 초안을 만드는 능력, 잘못된 내용을 찾아내는 능력, 책임지고 일을 끝내는 능력은 서로 다르다. 한 부분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고 나머지까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회사의 조직도를 바꾸려면 그 사이를 메우는 일이 먼저 필요하다.
메타의 ‘프로젝트 OT’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좋은 도구를 직원에게 나눠주는 수준을 넘어, AI가 일하는 방식을 중심에 놓고 사람의 역할을 다시 배치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 방향이 현실에서 얼마나 작동하는지 묻는 것은 기술에 대한 찬반과 다른 문제다. 실제로 줄어든 업무가 무엇인지, 새로 생긴 관리 업무는 무엇인지, 변화의 부담을 누가 감당하는지 따져봐야 비로소 생산성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는 AI를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를 성과로 보는 분위기가 특히 마음에 걸린다. 도구를 열어본 횟수나 생성한 문서의 개수는 세기 쉽다. 반면 덜 틀리고, 고객에게 더 빨리 전달하고, 동료의 재작업을 줄인 정도는 확인하기 번거롭다. 쉬운 숫자가 중요한 숫자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업무는 활발해 보이는데 정작 필요한 일은 끝나지 않는다. 이번 사례는 그 차이를 다시 묻게 한다.
02 · PROJECT OT
작은 팀으로 바꾸는 일과
사람의 일을 없애는 일
로이터가 2026년 8월 26일 보도한 프로젝트 OT는 ‘Organization Transformation’의 약자다. AI 중심의 업무 방식과 조직 개편을 함께 추진하는 구상이었다. 메타는 프로젝트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일부 팀을 최대 60% 줄이는 검토안에는 재배치도 포함됐으며 전 직원의 60%를 해고하려던 계획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5월의 10% 감원은 시행됐고, 11월로 구상한 두 번째 개편 계획은 중단됐다. 로이터 취재 보도·메타 답변 ↗
여기서 팀 규모와 회사 전체의 고용을 섞어 읽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한 팀에서 사람이 빠졌다고 해서 그 인원이 모두 회사를 떠난 것은 아니다. 다른 업무로 이동했을 수도 있고, 여러 팀이 함께 쓰는 전문 인력이 되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조직도에 작은 팀만 남았다고 해서 그 팀이 실제로 다섯 사람의 노동만으로 움직인다고 보기도 어렵다. 밖에서 지원하는 사람과 결과를 검토하는 사람까지 포함해야 운영의 전체 모습이 보인다.
역할을 유연하게 만드는 시도 자체에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작은 수정 하나를 위해 여러 부서의 순서를 기다리는 일은 답답하다. 한 사람이 AI의 도움을 받아 시안을 만들고 간단한 구현까지 해낸다면 대화가 빨라질 수 있다. 다만 초안을 혼자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이유로 디자인, 분석, 개발의 전문적인 판단까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할의 경계가 낮아지는 것과 전문성이 필요 없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변화다.
계획이 멈춘 이유도 한 가지로 단정하지 않는 편이 정확하다. 로이터는 직원 반발과 기대에 못 미친 내부 생산성 지표를 함께 전했지만, 방향 전환의 정확한 결정적 계기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일을 AI 전체의 실패라고 선언하거나, 직원들이 혁신을 막았다고 정리하는 것은 모두 지나치다. 지금 읽을 수 있는 것은 급격한 조직 변화의 일정이 실제 도구의 성숙도와 사람들의 수용 속도를 앞질렀을 가능성이다.
03 · DATA AND TRUST
내가 일하는 방식이
나를 대신할 시스템의 교재가 된다면
직원들의 불안은 인원 조정에만 머물지 않았다. WIRED의 취재에 따르면 메타의 미국 직원 업무 기기에 도입된 MCI 도구는 특정 앱 사용 화면과 마우스·키보드 활동을 AI 학습용으로 수집하는 방식이었다. 이에 반대하는 청원과 직원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 보도에서 확인되는 반발의 핵심은 기술을 쓰기 싫다는 태도보다, 자신의 업무 흔적이 어떤 목적과 조건으로 이용되는지에 대한 불신에 가까워 보인다. 직원 데이터 수집 관련 취재 ↗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을 배우게 한다는 설명은 기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떤 메뉴를 열고 어디에서 멈추는지 관찰하면 소프트웨어 조작에 필요한 사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얻고 싶은 데이터와 직원이 보호하고 싶은 경험은 같은 화면에 겹쳐 있다. 업무 화면에는 시행착오와 실수, 동료와의 대화 맥락이 함께 남는다. 수집 목적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당사자의 모든 걱정이 해결되지는 않는 이유다.
만약 직원에게 더 나은 AI를 만드는 데 협조하라고 하면서 그 AI가 이후의 고용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설명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협조를 부탁받는 사람은 자신의 노하우를 나눌수록 자기 자리가 불안해지는 상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이 변화에 적응하느냐의 문제만으로 돌리기 어렵다. 회사가 원하는 협력과 직원에게 주어지는 동기가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데이터를 얻는 문제 안에 신뢰의 문제가 들어 있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질문은 의외로 구체적이다. 어떤 앱에서 어떤 정보를 모으는지, 보관 기간은 얼마인지, 누가 볼 수 있는지, 업무 평가와 분리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특정 국가의 법적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용자가 이해할 수 있는 경계를 마련하자는 이야기다. 직원이 무엇을 가르쳤고 그 결과 어떤 도움을 받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데이터 제공이 일방적인 추출처럼 느껴지는 상황을 줄일 수 있다.
04 · OUTPUT IS NOT OUTCOME
코드가 220% 늘었다는 숫자에서
빠져 있는 질문
로이터가 확인한 메타 내부 자료에는 서로 다른 증가율이 등장한다. 내부 플랫폼·인프라의 코드 변경은 전년 대비 220% 늘었지만, 사용자에게 전달된 신규·개선 기능으로 이어지는 변경은 36% 증가했다. 주요 기술·보안 사고는 40%, 사고 대응에 쓴 시간은 70% 늘었다는 내부 기록도 보도됐다. 서로 다른 지표이므로 이 비율들만으로 AI의 순수한 인과 효과나 투자 수익률을 계산할 수는 없다. 내부 지표 보도 ↗
그래도 숫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생성된 코드가 늘었다면 그것을 읽고 검토하고 기존 시스템과 맞추는 일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초안 생산이 빨라진 곳의 다음 단계가 그대로라면, 전체 업무의 병목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위치로 옮겨간다. 주방에서 음식 준비만 빨라지고 포장과 배달은 그대로인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앞단의 처리량이 커졌다는 사실만으로 손님이 더 빨리 음식을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코드에서는 줄 수가 적은 해결책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이미 있는 기능을 다시 쓰거나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면 결과물의 분량은 줄어들 수 있다. 문서도 마찬가지다. 결정을 위해 필요한 한 문장이 정확하게 남는 편이 그럴듯한 설명 열 쪽보다 유용할 수 있다. 그래서 AI의 성과를 평가할 때 산출물의 크기만 앞세우면, 간단하게 해결할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행동에 보상을 주게 될 위험이 있다.
내가 먼저 보고 싶은 지표는 결과물을 만든 뒤 끝까지 통과시키는 데 걸린 시간이다. 처음 제출했을 때 받아들여졌는지, 몇 번 수정했는지, 배포 후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도구를 사용한 사람에게만 시간을 물으면 일이 줄었다는 답이 나올 수 있다. 그다음 순서의 동료에게도 물어야 한다. 팀 전체가 편해졌는지 확인하는 데 필요한 것은 거창한 선언보다 앞뒤 작업을 연결해서 보는 습관이다.
05 · THE DELIVERY TEST
보기 좋은 결과물과
돈을 받고 납품할 수 있는 결과물
실제 업무와 가까운 기준으로 AI를 평가하려는 시도도 있다. CAIS와 Scale Labs가 개발한 Remote Labor Index는 프리랜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전문가의 납품물에 견줄 만한지를 사람 평가자가 판단한다. CAIS의 2026년 7월 1일 공개 결과에서 Fable 5의 완전 자동화율은 15.8%였다. 이는 해당 시점의 모델과 실행 환경, 선정된 과제에서 나온 값이다. 오늘의 모든 AI나 모든 직업을 대표하는 성공률로 읽어서는 안 된다. CAIS 평가 방법과 결과 ↗
이 평가에서 마음에 드는 대목은 질문이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끝나지 않고 의뢰한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묻는다. 예를 들어 반지의 중심 보석 모양을 바꾸는 작업이라면, 반짝이는 반지 이미지 한 장만으로 의뢰가 완료되지는 않는다. 기존 디자인의 조건을 유지했는지, 요구된 형태로 바뀌었는지, 수정 가능한 모델까지 전달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최종 이미지가 비슷해 보이는 일과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일은 다르다.

아래에 실은 이미지는 그 과제에 제시된 사람 전문가의 결과물이다. AI가 만든 것이라고 소개하지 않은 이유는 비교의 기준이 무엇인지 먼저 분명히 하고 싶어서다. 실제 납품에서는 이미지 밖에 있는 조건이 적지 않다. 파일이 정상적으로 열려야 하고, 다른 사람이 이어서 수정할 수 있어야 하며, 요청한 변형이 빠지지 않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한 장만 평가하면 업무의 상당 부분이 검사에서 빠질 수 있다.

그렇다고 완전 자동화에 실패한 과제는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초안 작성이나 자료 정리에는 유용했어도 최종 납품까지 혼자 마치지 못했을 수 있다. 반대로 여러 단계를 무사히 넘겼더라도 마지막 요구 하나를 놓치면 전체 과제는 실패로 평가될 수 있다. 실무에서는 어느 단계가 안정적으로 도움을 주는지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직업 하나를 통째로 대체할 대상으로 잡으면 이런 부분적인 이익과 한계를 함께 놓치기 쉽다.
06 · THE COST OF CLEAN-UP
AI 사용료보다 먼저 보이는 비용,
동료가 다시 하는 두 시간
겉으로는 완성돼 보이지만 실제 일을 진전시키지 못하는 AI 결과물을 ‘워크슬롭’이라고 부른다. BetterUp Labs와 Stanford Social Media Lab이 미국의 정규직 사무직 종사자 1,1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5년 조사에서는 40%가 지난 한 달 동안 이런 결과물을 받았다고 답했다. 한 건을 해결하는 데 평균 약 두 시간이 들었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자기보고식 설문이므로 모든 회사에서 같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뜻은 아니다. 조사 원문과 범위 ↗
이 개념은 AI가 틀릴 수 있다는 익숙한 설명보다 업무 현장에 가까이 닿는다. 틀린 결과를 만든 당사자와 그것을 고치는 사람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문서를 받은 사람은 어느 부분을 믿어도 되는지부터 다시 확인해야 한다. 설명을 요청하고 수정본을 기다리는 사이 자신의 일정도 밀린다. 비용은 모델 사용료처럼 명확한 청구서로 오지 않는다. 회의가 길어지고 답장이 늘어나고 검토가 한 번 더 붙는 방식으로 쌓인다.
아마존의 AWS 장애 사례도 표현을 조심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아마존은 2026년 2월 공식 설명에서 해당 장애의 원인이 잘못 설정된 접근 권한이며, 한 리전의 Cost Explorer에 국한된 사건이라고 밝혔다. AI 결함 때문에 AWS 전체가 멈췄다는 설명과는 다르고, 두 번째 장애가 있었다는 주장도 부인했다. 사건을 해석할 때 회사의 반론을 빼면 기술의 문제와 운영 권한의 문제를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다. 아마존의 공식 설명 ↗
실무에 남는 질문은 도구의 이름보다 그것이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었느냐다. AI가 초안을 제안하는 것과 운영 환경을 실제로 바꾸는 것은 실패했을 때의 영향이 다르다. 반복 실행이 가능하다면 잘못된 작업의 양과 비용도 함께 커질 수 있다. 그래서 비용을 볼 때는 구독료 외에 검토, 수정, 복구 시간을 더해야 한다. 모델을 더 저렴하게 쓰는 요령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며, 일을 넘기는 경계를 정하는 문제가 된다.
특정 기업의 회계 수치가 아니라, 도입 효과를 비교하기 위한 점검 항목입니다.
07 · THE FIRST RUNG
전체 고용이 버텨도
첫 일자리를 찾는 사람은 다르게 느낀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와 ADP Research의 고용 지표는 AI에 대한 노출 정도와 연령을 나눠서 살펴본다. 전체 연령을 합친 그래프에서는 노출 집단 사이의 차이가 비교적 작다. 반면 22~25세 초기 경력자에서는 노출도가 높은 두 집단의 고용 감소가 더 두드러진다. 이 대비는 경제 전체의 평균이 사회에 막 진입하는 사람의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스탠퍼드 AI Economic Indicators ↗
두 그래프를 읽을 때는 축부터 확인하는 편이 좋다. 세로축은 취업률이나 실업률이 아니라 2022년 11월을 100으로 맞춘 고용 지수다. 선이 90 근처에 있다는 이유로 실업률이 10%라고 읽으면 안 된다. 또한 미국의 해당 기업 표본에서 관찰한 변화이므로 한국의 모든 청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다. 그래프가 강한 인상을 줄수록 무엇을 측정했고 무엇은 측정하지 않았는지 같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흐름이 전부 AI 때문에 생겼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금리와 경기, 채용 방식의 변화 등 함께 살펴볼 요인이 있고, AI 노출도는 실제 대체 여부와 같은 뜻도 아니다. 그래도 우려할 만한 경로는 생각해볼 수 있다. 회사가 기존 직원의 해고보다 신규 채용을 늦추는 방식으로 업무를 조정한다면 변화는 빈자리의 감소로 나타날 수 있다. 이미 일하는 사람에게는 조용한 변화가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높은 문턱이 되는 셈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경험을 쌓는 순서다. 초급자에게 주던 비교적 단순한 일이 AI로 넘어가면, 숙련자가 되기 위해 처음 맡아보던 업무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 처음부터 복잡한 판단을 잘하는 사람만 뽑겠다는 방식으로는 그 판단을 배울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AI가 초급자의 연습을 돕게 할 것인지, 초급자가 들어올 자리를 줄이는 데만 사용할 것인지는 기술 성능과 별개로 조직이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08 · A BETTER HANDOVER
우리 팀에서는
무엇부터 바꿔보면 좋을까
거대한 회사의 조직 개편을 작은 팀에 그대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우선 반복해서 발생하면서 완료 여부를 확인하기 쉬운 업무 하나를 고르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회의록에서 결정 사항과 담당자, 기한을 추려내는 작업이라면 결과를 원문과 대조할 수 있다. 반대로 누가 실제로 동의했는지 모호한 회의에서 책임자를 임의로 정하게 하면 AI는 단순 정리를 넘어 판단에 개입하게 된다. 같은 회의록 업무라도 맡길 범위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다음은 완료의 기준을 먼저 적는 일이다. 보기 좋게 정리해달라는 요청보다 무엇이 빠지면 안 되는지,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하는지, 불확실한 부분은 어떻게 표시할지를 정하는 편이 검토하기 쉽다. 결과물의 모양만 지정하면 빈칸을 그럴듯한 말로 채울 유인이 생긴다. 확인하지 못한 것은 비워두거나 따로 표시하게 하면, 다음 사람이 사실과 추측을 구분하는 데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실험할 때는 원래 방식으로 처리한 업무와 조건을 맞춰 비교해보자. 초안을 받는 시간만 재지 말고, 최종 승인까지 걸린 시간과 수정 횟수를 함께 남기는 것이다. 업무 난도가 다르거나 숙련자가 검토한 정도가 다르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니 비교 조건도 적어두면 좋다. 생각보다 효과가 작더라도 실패를 숨길 이유는 없다. 어디에서 시간이 새는지 알게 되는 것이 다음 실험의 재료다. 도입했다는 보고보다 이런 기록이 더 쓸모 있다.
잘 작동하는 범위를 찾은 뒤에도 사람의 최종 확인이 필요한 지점은 남겨두는 편이 현실적이다. 외부에 나가는 수치, 고객에게 하는 약속, 운영 환경에 적용하는 변경은 오류의 영향이 크다. AI가 자신 있게 답했다고 검토가 끝난 것으로 처리하지 말고, 근거와 결과를 확인할 담당자를 정해야 한다. 사람이 모든 클릭을 따라 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기준과 책임을 빈자리로 두지 말자는 이야기다.
09 · THE HUMAN PART
남겨야 할 사람의 역할을
먼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는 직원들에게 보낸 공개 메시지에서 생성형 AI와 에이전트가 일부 업무의 인력 수요를 줄이고 다른 업무의 수요를 늘릴 것이며, 향후 몇 년 동안 사무직 전체 인원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것은 이미 모든 대체가 완료됐다는 증명이 아니라 회사가 밝힌 전망이다. 그렇지만 기업이 AI를 인력 운영과 연결해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로는 읽을 수 있다. 기술의 완성 여부만 기다려서는 고용의 변화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앤디 재시의 직원 메시지 ↗
그렇다면 사람에게는 창의적인 일만 남을 것이라는 설명으로 충분할까. 듣기에는 좋지만 너무 넓은 말이다. 실제로는 요구 사항을 정확히 이해하고, 서로 충돌하는 조건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잘못된 결과를 알아보는 일이 남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무거운 책임이 된다. 검토 업무를 사람에게 남기면서 검토할 시간과 교육을 주지 않는다면, 인간이 최종 책임자라는 문구는 책임을 떠넘기는 말로 끝날 수 있다.
개인에게 필요한 준비도 도구 이름을 많이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자신의 일에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가르는 기준을 설명할 수 있어야 AI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판단할 수 있다. 업종의 맥락과 고객의 요구를 아는 경험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동시에 새로운 도구를 아예 외면할 필요도 없다. 작은 업무에서 도움을 받는 지점과 오히려 일이 늘어나는 지점을 직접 구분해보는 과정이 막연한 기대나 공포보다 구체적인 판단을 만들어준다.
메타의 시도가 남긴 질문은 결국 우리 회사의 하루에도 이어진다. AI를 켜기 전과 후에 일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빨라진 사람 옆에서 누가 더 바빠졌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사람이 줄었다는 결과만으로 기술이 성공했다고 할 수 없고, 사람이 검토한다는 이유만으로 자동화가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도구가 만든 초안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끝내는지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AI가 우리 일을 실제로 돕고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